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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하의 국제 정치상황

이 글은 필자가 노동자연대 회원 토론(영상보기)에서 발제한 내용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위기가 세계적 규모에서 놀라운 속도로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세계는 결코 안정돼 있지 않았다. 만성적 경제 위기, 지정학적 불안정, 기후 비상사태, 극우·파시즘의 준동, 대중 항쟁의 분출 등.

공포와 희망이 교차한 2020년 자본주의 체제가 재앙을 낳았지만 그에 맞선 저항도 분출했다

경제가 다시 추락하리라는 전망이 이미 2019년 하반기부터 나오고 있었다. 2007~2008년 미국발 금융 충격 이래로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었으며, 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브라질·터키 등 여러 나라에서 제조업 생산량이 전년 대비 하락했다. 미·중 무역 분쟁 때문에 무역 성장률도 낮아지고 있었다.

지정학적 불안정도 심각했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중동에서도 긴장이 첨예해지고 있었다. 2020년 벽두에 미국이 이란의 실세 군 장성 솔레이마니를 살해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인도·브라질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강경 우익이 집권해 인종차별과 국수주의를 부추기는 와중에,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극우와 파시스트가 준동하고 있었다. 반면, 프랑스·칠레·홍콩·레바논·이라크·수단 등지에서 대중 항쟁이 분출했다. 이런 항쟁들은, 그 전 10여 년간 지배자들이 은행과 기업은 구제하지만 노동계급을 비롯한 서민 대중을 공격한 것에 대한 분노가 배경을 이뤘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세계를 휩쓸기 시작할 때쯤, 이런 격동의 물결이 잠시 멈춘 듯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한층 날카롭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자본주의의 산물이 위기 심화의 촉매로

코로나19는 발생·전파·효과 면 모두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파괴적 면모를 뚜렷이 드러냈고[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의 관련 인터뷰 보기], 이 체제가 위기를 관리·해결할 능력이 매우 취약함을 드러냈다.

이미 약 7400만 명이 전염됐고, 160만 명 넘게 사망했다.

게다가 전염병이 세계 자본주의의 생산·유통망을 따라 계속 번져 나가면서,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불황 이래 가장 거대한 침체로 접어들었다. 선진국뿐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생산량과 교역량 모두가 뚜렷이 하락했다.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은 강경 우파가 집권한 미국·영국·러시아·인도·브라질 등지에서 특히 컸지만, 중도 좌·우파가 집권한 이탈리아·벨기에·프랑스·스페인 등도 만만치 않았다. 일례로, 서유럽에서 가장 먼저 확진자 100만 명을 넘긴 것은 사회당과 포데모스가 연정을 구성한 스페인이었다.

각국 정부들은 대개 이윤율 하락을 우려해 뒤늦게, 또 턱없이 부족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그 정도 전염병 대응만으로도 경기가 가파르게 둔화했다. 그래서 이들은 전염병이 한창인데도 무리하게 경제 활동을 재개하려 들었다. 확진자·사망자가 치솟았다.

자본주의가 체제의 논리에 따라 인간보다 이윤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수많은 유색인종과 노동계급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렸고, 나라 경제도 망가졌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나라들에서 말이다.

불황과 코로나19는 사람들을 가난과 고통으로 내몰았다 ⓒ출처 Anthony Quintano(플리커)

방역에 비교적 성공했다고 여겨진 나라들(대표적으로 중국)은 경기 둔화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듯하지만, 피해를 온전히 면치는 못했다. 예컨대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44년 만에 최저치다. 중국의 평균 임금 인상분도 코로나19 이전에 내놓은 전망치보다 크게 줄었다. 대도시에서 노동자들이 집세를 내지 못해 퇴거당하는 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경기 둔화와 방역 실패가 겹친 많은 나라들에서 정부 지지가 하락했다. 특히 강경 우파가 집권했던 미국·브라질 등지에서 그랬고,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정부도 타격을 입고 있다. 하지만 방역을 비교적 잘 했다고 여겨진 나라들이라 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각국 지배자들은 “국민적 단결로 국난 극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외부인’으로 여겨지는 집단에 대한 증오를 조장하며 인종차별·국수주의를 부추겼고, 방역을 명분으로 경찰력·검열 강화 등 권위주의적 요소를 통해 대중이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차단하려 했다.

한편, 전염병 대유행 시기에 국가 간 갈등도 더 첨예해졌다. 전염병 위기와 경제 위기가 세계적이지만 위기 해결 과정에서 ‘국제 공조’가 발휘되기는커녕 국가들이 제각기 살 길을 찾아야 했고, 위기의 타격도 불균등했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미·중 갈등의 골이 더한층 깊어졌다. 시진핑은 코로나19를 비교적 빨리 ‘극복’했음을 내세워 국제 무대에서 위상을 높이려 들었고, 트럼프는 초기 방역에 처참히 실패한 것을 덮으려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줄기차게 떠들었다.

핵 강국들인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국경 분쟁도 격화했다. 동지중해와 중동에서도 역내 갈등 수위가 높아졌는데, 지역 강국들뿐 아니라 프랑스·독일·러시아 등 제국주의 국가들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기존의 갈등이 전쟁으로 격화했고, 여기에도 지정학적·경제적 이익을 원하는 여러 국가들이 개입했다.

기후 재앙도 빈번해졌다. 지난해 시작된 호주 산불은 올해 2~3월에야 완전히 진화됐다. 몇 달 후에는 미국 서부 12개 주(州)에서 몇 달 동안 산과 들이 불탔다. 대서양발 태풍도 역사적으로 손꼽을 정도로 빈발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할 사회적 비용 지출은 위기의 크기에 견줘 턱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약속된 대응들도 경제적·지정학적 경쟁 때문에 뒤틀리곤 했다.

미국 서부의 대형 화재 기후 재앙은 빈번한 일이 됐다 ⓒ출처 Brody Hessin

정치 위기가 심화하다

위기가 중첩되고 지배자들의 위기 대처 능력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체제의 ‘정상적’ 지배 방식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게 된다. 체제가 지배자들만이 아니라 대중의 생명, 안전, 복리 증진을 이뤄낼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전염병 위기가 첨예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과 생계)과 안전(방역)이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했고, 국가가 자신들을 보호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배자들은 전염병 대응에 대개 무능하고, 위기의 대가를 대중의 생명과 안전으로 치르려 한다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실업, 가난, 복지 삭감 등에 더해 전염병마저 대중의 생명과 안전을 크게 위협했다.

그러면서 이 체제가 양산한 엄청난 불평등, 자본 논리에 자연을 욱여넣으려 하고 인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것, 불치병처럼 거듭되는 경제 위기, 체제에 깊이 뿌리 내린 인종차별 등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점차 깊어졌다. 그리고 이런 불만들은 때로 급작스런 투쟁으로 분출하기도 했다.

때로 코로나19 자체가 투쟁을 낳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지역들에서 노동자들이 파업해 정부의 방역 방기에 항의했고, 영국·스페인·미국 등에서는 전염병 대응의 최전선에 있는 보건 노동자들이 정부의 방역 완화에 반대하고 작업장 안전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여러 차례 투쟁을 벌였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미국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분출한 것이다. 이 운동은 유색인종과 노동계급이 경제·전염병 위기로부터 커다란 피해를 본 것에 대한 분노와 그 과정에서 더한층 부추겨진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가 만나 폭발한 것이었다.

저항 “인종차별은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 나선 시애틀의 보건 노동자들 ⓒ출처 Backbone Campaign(플리커)

이 운동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벌어진 모든 항쟁 중 가장 규모가 컸는데, 미국뿐 아니라 80여개 국에서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그중 몇몇 나라들에서는 운동이 ‘현지화’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크게 벌어지고, 독일에서 극우와 무슬림 천대에 반대하는 운동이 성장한 것이 그 사례다.

기존 정치 체제의 오랜 병폐들이 반란을 촉발한 경우들도 있다. 타이에서는 부패한 왕정과 군사 정권에 맞선 청년 항쟁이 분출했다. 벨라루스에서는 독재자 루카셴코의 선거 부정과 경찰 탄압을 규탄하며 대중파업과 시위가 벌어졌다.

이전의 투쟁이 새 국면을 맞은 곳도 있었다. 볼리비아에서는 2019년 우익 쿠데타에 반대해 총파업과 대규모 도로 봉쇄가 벌어졌다. 폴란드에서는 대중 투쟁으로 막아냈던 낙태 금지 확대가 다시 추진되자, 그에 맞서 격렬한 대중 시위가 분출했다. 그리스에서는 파시스트 정당 황금새벽당이 범죄 집단으로 규정되면서 반(反)파시즘 운동이 중요한 승리를 거뒀고, 수단에서는 시위가 다시금 격화하며 지난해 군부와의 합의로 혁명이 억제됐던 상황이 바뀔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이런 운동들은 2019년 세계적 반란 물결의 몇몇 특징을 공유한다. 첫째, 노동계급 대중이 대규모로 저항에 나섰다. 둘째, 이들은 위기가 중첩되면서 겪은 공통의 피해(생명과 안전이 위협당함)에 대한 분노를 공유했다. 셋째, 그래서 기존 집권 세력과 그들의 지배 방식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넷째, 이들 운동은 대개 급작스럽게 분출했고 놀랄 만큼 전투적이었다.

지배자들이 강력하게 탄압했지만, 적잖은 경우 저항은 탄압에도 아랑곳 않고 더 격렬해졌다. 일례로, 트럼프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초기부터 군대 투입을 위협했고 경찰과 연방 부대로 시위를 계속 공격했지만, 운동은 더 격렬해졌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사회적 불만이 저항으로 분출한 것은 아니었다. 그 양상은 나라별로 상당히 불균등하다.

각각의 나라에는 저마다 독특한 구석이 있다. 사회적 불만이 깊어진다고 자동으로 투쟁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전염병 위기와 경제 위기의 파괴력도, 그 와중에 노동계급이 겪는 경험과 느끼는 자신감도 나라마다 똑같지는 않았다. 때로 인종차별·국수주의를 부추겨 노동 대중의 쓰라림과 분노를 뒤틀려는 오른쪽으로부터의 시도가 먹히는 경우도 있었다.

나라 안팎에서 긴장이 강화되는 와중에 지배자들이 ‘애국심’에 호소(“국민적 단결로 국난 극복”)하는 것이 여러 나라에서 저항의 발전에 만만찮은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편, 오른쪽에서는 …

코로나19 대유행 대응 문제는 여러 집권 세력들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방역을 방기하고 대중의 고통에 냉혹했던 강경 우익 집권 세력들이 대중의 분노를 샀다.

코로나19는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패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지표상 나아지는 듯했던 경제 상황에 기대 재선을 도모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의 피해가 미국을 강타하고 경제를 ‘역대급’으로 둔화시키면서 그 전략은 산산조각났다. 재앙적 전염병이 고삐 풀린 듯 날뛰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인종차별·국수주의에 더한층 기댔지만 재선에 실패했다.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도 최근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11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지난해 말 총선에서 대승했던 영국의 보리스 존슨은 코로나19와 브렉시트 문제 등으로 정치 위기를 겪고 있다. 인도의 힌두 국수주의자 나렌드라 모디는 억대 규모의 노동자 총파업과 농민 반란에 직면했다.

하지만 강경 우익·극우 세력이 몰락한 것은 아니었다. 곳에 따라 극우 세력과 파시스트들은 전염병 위기 속에서 전진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기성 권력자들이 전염병 위기 대응에 실패하고 다른 경제적·사회적 위기도 심화하면서, 여러 음모론이 번성했다. 위기의 피해를 심각하게 입은 하층민들에게 진보적 변화가 현실적으로 여겨지지 않을 경우에 더욱 그랬다.

미국에서 큐어넌(QAnon) 음모론이 운동으로까지 성장하고 전염병 대유행 초기에 반(反)마스크 무장 시위가 분출한 것, 영국과 독일에서 “전염병은 조작”이라는 음모론이 대규모 ‘반(反)마스크’ 시위를 연거푸 촉발한 것 등이 그 사례다.

음모론에 담겨 있는 여러 반동적 요소들은 극우 정치와 손쉽게 연결될 수도 있었다.

지배자들이 인종차별·국수주의 등을 고무한 것도 극우에게 기회가 됐다. 트럼프가 재선 승리를 위해 극우 단체 ‘프라우드 보이스’를 고무한 일이 그랬다. 그 덕에 오랫동안 파편화돼 있던 미국의 극우·파시스트 세력들이 전국적으로 성장할 전망과 자신감을 얻었다. 프랑스에서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과 그 대표 마린 르펜이 기세를 올리는 데서도 비슷한 동학이 작동했다.

요컨대, 위기가 심화하는데 기존의 지배 수단들이 충분히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극우·파시스트들은 체제가 뿌리는 온갖 반동적 사상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며 기반을 지키거나 다질 수 있었다.

이런 힘이 기성 정치의 우경화를 촉진하고 나아가 정치 지형 전체를 노동계급에 해롭게 바꿀 수 있다는 위협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저지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 반(反)파시즘 운동의 승리가 그 좋은 사례다. 그리스에서 혁명적 좌파가 중심이 돼 황금새벽당이 급성장하기 전인 2009년부터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이라는 광범한 연대체를 결성하고 대중 운동을 조직했다. 심각한 경제 위기 속에서 파시즘이 성장할 수 있다는 분석에 근거한 실천이었다.

이 운동이 강력하고 광범한 운동으로 발전하고, 황금새벽당의 총선 패배에 만족하지 않고 끈질기게 이어간 덕에(여기서 혁명적 좌파가 중요한 기여를 했다) 황금새벽당에 중요한 패배를 안길 수 있었다.[관련 기사 본지 339호 ‘그리스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황금새벽당 ‘범죄조직’ 판결은 반파시즘 운동의 승리다’]

무엇이 필요한가?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와 코로나19로 인한 손실을 노동계급에게 떠넘기고 있고,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은 무시되고 사지로 내몰리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 때문에 대중의 울분은 더 커질 것이다.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크리스 하먼(1942~2009)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공격 때문에 “계급적 울분이 곳곳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다”고 표현한 바 있는데, 이제 그 웅덩이가 더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정치 전략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국제적으로 보면, 지난 몇 년 동안 부상했던 좌파적 개혁주의는 대중의 진보적 변화 염원에 대개 부응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의 선거 도전이 또다시 좌절하고(샌더스는 좌파 개혁주의자가 아니고 그 자신의 정치 지향은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였다. 다만 부르주아 양당 체제가 공고한 미국의 정치 맥락에서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상당한 주목을 끌었다), 영국에서 제러미 코빈과 노동당 좌파가 가라앉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지난 몇 년간 스페인에서 부상했던 포데모스는 올해 사회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며 정부의 방역 완화 정책을 지지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체제를 이용해 노동계급의 복리를 증진해야 한다는 개혁주의 전략 때문에 위기에서 체제를 구출하려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에 따르다 보면, 대중의 사회적 불만이 투쟁으로 거대하게 분출할 때 그에 제대로 교감하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은 올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에 거의 조직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다. 샌더스 자신은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경찰 해체 요구를 공공연히 반대하고 오히려 경찰 예산 증액을 지지했다.

이런 태도로는 진보적 변화 염원을 억제하고 위기에서 인간이 아니라 이윤을 구제하려는 지배자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오늘날 세계는 인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와 작동 방식 자체가 이 위기를 낳고 키우고 있음을, 그리고 이 체제의 지배자들은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도 위기를 해결할 수도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폴란드와 독일에서 활동한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가 주장했듯이, 이 사회는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갈림길에 있다.

불평등·차별·재앙에 맞서 올해 분출한 반란들은 진정한 변화의 희망을 흘낏 보여 줬다. 미국에서 그간 비현실적이라 여겨졌던 (가령 ‘경찰 해체’) 요구들을 당면한 정치 의제로 부상하게끔 한 것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라는 (사회적 구성에서 노동계급 비중이 큰) 대중 저항이었다.

체제의 정신 나간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계급투쟁을 중심에 두고, 그런 투쟁으로 온갖 위기에 맞서도록 하는 혁명적 정치 전략이 강화돼야 한다.

그런 정치 전략은, 오늘날 위기의 원인을 명확히 하고, 위기의 대가를 대중에 전가하려는 지배자들의 시도에 결연히 반대하며, 깊이 고인 계급적 울분이 분노에 찬 투쟁으로 표출되는 것을 고무하고, 승리의 가능성과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정치적 대안을 굳건히 건설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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